Another Turntable - 1, 2022, 4 channel video, loop (music by Eunice Kim)
전시서문
박동원
이것은 눈으로 보는 턴테이블이다. 점묘화에서 순색이 병치되듯, 여러 색상의 선들이 빼곡히 줄짓는다. 선들의 집합은 조망하거나 이를 확대한 4개의 화면으로 분리된다. 동일한 사물이지만 보는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선이 교차하거나 비껴간다.
관객은 선으로 구성된 수면이 다른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것을 확인한다. 선과 선이 강하게 충돌한다. 그러나 미처 포착하기 전에 선은 다시 분리된다. 본다는 것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순간은 붙잡기 전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턴테이블의 회전운동은 다시 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됐다.
턴테이블은 변화하는 외부세계를 투영한 장치이다. 외부세계는 각도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망막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한정된 이미지의 부실한 연속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이를 규합하고 다듬는다. 사물의 모든 면면을 파악하지 못할지언정, 의식은 고유의 방식대로 사물을 그려낸다. 조각난 정보를, 차이를, 시간 순으로 병렬하고 일련의 흐름으로 사물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물의 형태는 개인의 인식 속에서 형태를 갖춰나간다. 망막에 맺힌 상(像)의 연속체가 사물을 구성하는 단서가 되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시각경험이 생성된다. 시간이 망각되고 생각이 사라진 자리에 사물만 남는다. 본 작업의 조형은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선들이 무수하게 모여서 하나의 몸짓을 만든다. 색상환의 표에서 따온 무지개 색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형상은 혼자만 아는 형상이다.
백필균
여명이 열리는 시간에 박동원과 밤이 마지막 대화를 잇는다. 질문하는 자에게 밤은 삼라만상이 한 곳, 그의 꿈으로 모이는 시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 줄기 빛가닥으로 겹치거나 수다발로 흩어진다. 박동원은 그곳에 기울어진 턴테이블을 일으켜 세우며 지난밤에 본 소용돌이를 상상한다. 그 소용돌이는 무지개처럼 색색이 찬란하고 파도처럼 주변을 물들인다. 그가 다가서자 소용돌이가 허상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박동원은 손으로 그것을 낚아챈다
디지털 선형에 색 변화와 움직임으로 존재의 단면을 추상화하는 박동원의 작업은 전시 (박동원: 어나더 턴테이블>에서 전시장 가운데 건축 벽과 기둥 표면을 부유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어두운 방 가운데 박동원의 연작 '인식에서의색'(Colorin Perception)은 수많은 선들로 조직된 고리형태의 동일 디지털 입체물을 다른 시점별로 본 화면을 직병렬적으로 연결한 작업이다. 박동원은 대상에 가깝거나 먼, 앞이나 옆에서 연출한 각 시점별 화면을 공간에 사방으로 구성해 복합적 실상을 조감한다. 한 점으로 호를 그리던 움직임이자전하는 원형 구조물 일부로 드러나거나, 반대로 게슈탈트적 이미지를 제시한 후 이를 다시 부분화하는 이미지는 차원적 존재를 생각하는 여지가 맴돈다. 한정된 색상에 대비효과로 방대한 색 스펙트럼을 열고, 빠른 속도의 움직임에 거리두기로 고요한 웅장함을 보는 박동원 작업에서의 시점 간극은 각기 다양한 양상들이 교차하는 삶을 찬양하거나 애도한다.
이어 작곡과 배경음악, 비평과 전시텍스트, 사진과 기록, 디자인과 포스터, 설치과 영상, 큐레이팅과 전시 실천은 이곳에서 박동원과 교차하며 공통된 주제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방법으로써 함께 공명한다. 일반 전시 구조를 조직하는 현장에 참여자가 각기 다른 작업으로 한 맥락을 조율하는 상상은, 특히 박동원에 주요한 사유지점으로 접속한다. 코끼리 몸에 서로 다른 부위를 살피듯, 이곳의 협력자들은 각 고유한 의식으로 한 사람의 예술세계를 탐문한다. 참여자별 접근은 서로와 함께 합창하는 특정한 공동장으로 행진한다. 그 모든 기술은 박동원에게 일부이면서 또한 외부에 있다. 유니스 킴이 현대사회 테크놀로지를 성찰한 본연의 태도와 방법에 이어 박동원의 시각적 요소에 착안한 '공간(Space)', '선(Strings), '색(Color)' 사운드 3부작은 이번 전시에서 박동원 작업 가운데 반복적인 모티브 층위가 이동하고 뒤섞이는 특징을 반영한다.
개별적 만남에서 박동원의 별은 또 다른 성단이 행렬하는 진로에 일시적으로 유입한다. 여전히 과거 성단과 연결되어 있는 그에게 이번 방문자는 그 전체를 또 다른 차원으로 전이할 수 있는 세계자이다. 복잡다단한 갈등이 팽배하는 경쟁에서, 전지구적 공동위기가 가속하는 불안에서, 그 영향이 사회와 개인 일상에 모두 찾아온 세계에서 박동원은 거시와 미시, 복합성과 단순성을 재차 오간다. 명징한 답을 이끌어내기보다 열린 경계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그는, 지난밤 별들이 속삭인 진실에 귀기울인다.
변환을 매개하는 삼차원의 지지체
안소연
움직임은 소리를 갖는가? 색은 그림자를 포획하는가? 형태는 표면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다소 이상한 질문이다. 박동원의 ⟪어나더 턴테이블(Another Turntable)⟫(2022)에서 바닥 군데군데 펼쳐놓은 프로젝터와 벽에 투사된 색의 이미지들과 그것의 선적이면서 입체적인 움직임과 신체의 왜곡된 그림자와 귓가에 스며드는 전자음악이 어떤 평형의 감각을 이루려는 순간, 나는 몇 개의 즉흥적인 질문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순전히 답을 구하려 했던 질문은 아니었을 테고, 단지 이 질문이 성립되는지에 관한 유효성을 되묻고 싶었던 속내가 컸다. 그것은 ⟪어나더 턴테이블⟫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것을 경험하는 신체 사이에서 과연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가를 알고자 하는 순진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직접 겪게 된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인지를 (역)추적해 가는 마음의 동요를 반영한다.
공간에 들어서면 어둠과 빛이 동시에 느껴진다. (여기서, ‘본다’는 표현 보다 ‘느낀다’는 동사가 더 적합해 보인다.) 조명을 꺼놓은 실내는 어둠을 그대로 가두고 있지만, 네 대의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 그 어둠 속을 운행하며 차곡차곡 쌓인다. 바닥 한 가운데 얼키설키 배치해 놓은 프로젝터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기계의 둥근 렌즈에서 응축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와 공간을 특유의 톤으로 밝혀놓고 마침내 네 개의 벽과 예기치 못한 기둥에 가서 닿았을 때 색채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납작한 육면체 상자처럼 생긴 공간의 모양새를 가늠해 볼 때, 내부에 빛을 가지고 있는 육면체의 기계는 그것[공간]의 반복적인 연쇄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네 대의 프로젝터는 개념상 그 내부에 빛과 색의 원형 같은 것을 보유하고 있어,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서 빛과 색을 지각하는 신체 경험에 대한 가상적인 상상을 한껏 부추긴다. 급기야는 신체의 크기가 축소된 것 마냥 어떤 빛 상자 속에 들어와 있다는 상상을 발 밑에 놓인 빔 프로젝터가 매개해 줄 수도 있을 테다. 여기서 물질적인 것은 나의 몸과 기계의 몸과 공간의 몸이 전부라, 이처럼 이 셋을 관통하는 감각과 지각이 어느 때 보다 예민하게 작동할 만도 하다.
박동원은 지각과 인식의 작용에 관심을 갖고 일련의 “색”과 “회전운동”의 요소를 탐구해 왔다. 특히 색에 관해서는 요셉 알버스(Joseph Albers)의 색채 이론을 참고해 색채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한 시각 경험의 특징을 실험하고 관찰했다. 회전운동의 경우, 사물을 지각할 때 신체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망막이 가진 한계를 초과하여 대상의 면면을 보게끔 하는 고전적인 나선구조를 표방한다. 이때, 박동원은 색채의 상호작용이나 회전운동의 질서와 객관성을 들추어 증명하는 지난 세기 시각 패러다임의 치열함을 다시 호명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러한 레퍼런스를 펼쳐 놓고 개별적인 조형 요소들의 변환에 대응하는 신체적 경험을 강조하되, 그것의 현상적 체험을 신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상의 영역까지 확대해 놓는다.
<인식에서의 색 (3, 4)>(2022)는 공간의 건축적 조건을 지지체 삼아 설치한 4채널 영상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별도의 모니터나 스크린을 두지 않고 실제 공간의 네 개 벽에 투사한 영상은, 그가 시네마 4D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추상적 색채의 조합과 가상의 움직임을 스펙터클 하게 보여준다. 디지털 이미지의 추상성과 가사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박동원은 일관된 작업 제목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 우리의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인식의 작용에 있어서 그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시간” 개념이며 “색”과 “회전운동”을 인식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첫 개인전 ⟪Forms in perception⟫(2022)에서는 시간의 축을 변경해 형태와 공간의 변형을 꾀함으로써 “본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메커니즘을 차분하게 살폈다면, ⟪어나더 턴테이블⟫에서는 색과 회전운동을 기술적으로 조정하여 다시 시간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대해 나갔다. 예컨대, 그는 시네마 4D 프로그램을 이용해 특유의 선적인 드로잉을 만들면서 (여기서도, ‘그리다’는 표현보다 ‘만든다’는 단어가 적합해 보였다.) 얇은 선에 각각의 색을 칠해 고유한 방식으로 집합체를 구축했다. 머리카락이나 실타래처럼 일정한 패턴에 따라 구축한 선들은 가상의 좌표 위에서 회전시켜 색의 분포를 임의로 뒤섞이게 했으며, 이 회전운동에 따라 편집되고 새롭게 이접된 시간이 생성된다. 이 가상의 시간은 회전하는 “턴테이블” 위에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그 규칙에서 벗어나 예기치 않게 튕겨 나가는 주관적인 시간들을 인식하게 한다.
삼차원의 공간을 지지체 삼은 ⟪어나더 턴테이블⟫ 설치의 묘미는 사운드에서 또 한 번 실력을 과시한다. 박동원은 사운드 협업자 유니스 킴에게 <인식에서의 색> 연작과 ⟪어나더 턴테이블⟫의 기획을 전달하며, 그가 설계한 인식의 메커니즘에 사운드의 요소를 추가할 방법을 찾았다. 박동원은 협업의 과정을 통해 유니스 킴이 제작한 음악파일을 테블릿 PC에 저장해, 전시장 안에서 관객이 헤드셋을 끼고 사운드를 선택하여 프로젝터와 벽[스크린] 사이를 자신의 신체로 조율하며 즉흥적인 경험을 극대화 하도록 했다. 이러한 즉흥적인 감각은 공간의 물리적 조건에 의해 더욱 다양하고 미세한 차이들을 발생시키는데, 이를테면 투명한 바닥에 굴절된 이미지의 허상과 기둥이나 벽의 구조에 따라 투사된 이미지들이 왜곡되는 현상에 의해서다. 게다가 실제의 공간과 가상의 세계가 접촉하여 새롭게 조성된 ⟪어나더 턴테이블⟫에서, 우리의 신체는 두 세계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조율하여 인식의 체계를 확장하게 된다. 앞서 질문했던 대로, 색과 회전운동이 구축한 공간의 움직임은 유니스 킴이 마련한 사운드와 충돌하여 지금 여기 현존하는 것 이상의 혹은 이전의 것들을 인식하게 한다. 빛이 벽에 켜켜이 쌓아 놓은 색채의 움직임들은, 빛의 근원으로서의 프로젝터와 스크린 사이에 신체를 삽입시켜 색과 그림자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벽과 기둥의 요철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들은 일시적으로 강력한 현전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동원은 ⟪어나더 턴테이블⟫에서 공간을 삼차원의 지지체로 설정해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인식의 매커니즘을 실험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삼차원의 공간이 발휘하는 우연성과 즉흥성을 신체의 경험과 연결시켜, 추상적인 이미지의 조형 요소들이 우리의 지각 작용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가를 구체화 했다. 그는 “인식”이라는 주체의 신체적 지각 경험을 통해, 외부 세계를 조성하는 조형 요소들의 상호 작용에 의한 가상적 힘 혹은 잠재적 힘에 주목하고 있다.
Another Turntable - 1, 2022, 4 channel video, loop (music by Eunice Kim)
Originating from the inquiry into translating subjective visual experiences into digital imagery, the 'Forms in Perception Series' visualizes the active process of perception formation. Influenced by Bauhaus principles and Josef Albers' theories, the series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perception and space. Divided into five areas, it delves into the gap between inner and physical time through the ever-changing movement of water, symbolizing the fluctuation between subjective and objective time. Emphasizing the interplay of motion and stillness, basic shapes are utilized to depict the continuous essence within movement, akin to the enduring characteristics of the sea amid its constant fluctuations. For example, the work structures the repetitive rhythms of the sea, where forms constantly shift, evoking varied visual experiences and reflecting the motif of the sea's surface—repetitive changes while maintaining its essence. Through rotation and overlapping forms, tension arises, inducing a sense of familiarity and unfamiliarity, intending to evoke subjective imagery within the viewer. This series encapsulates the intricate mechanisms of perception and visualizes them within a concise narrative.






